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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천국은 있다

천국은 있다   뼈의 입장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다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는 걸 알았다   모든 예상된 일은   예상치 않게 나를 흔든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뼈가 됐다는 걸   허연 『천국은 있다』   시인 유희경은 허연의 시를 ‘견딤’에 대한 시라고 말한다. “그 견딤은 시종일관 아슬하고,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 역시 견디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썼다. 인용한 시는 ‘이장’의 도입부다. 시인은 어머니의 죽음을 견뎌낸 것도 모자라, 뼈가 된 어머니를 확인하는 이장까지 견뎌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처럼 예상된 일이(누구나 죽는다), 예상치 않게 나를 흔드는 것, 그런 속수무책을 지치지 않고 견디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난겨울 날렸던 연이/ 예기치 못한 각도로/ 곤두박질쳤던 것처럼/ 이별은/ 전면적이고 모든 것인 일// 세상의 모든 설탕 덩어리들이/ 언젠가 다 물에 녹듯/ 긴 잠에서 깨어나면/ 어차피 이 세상이 아닌 것.’ 시 ‘이별의 재해석’의 일부다. 날아오른 연이 떨어지고, 설탕이 녹듯이 사랑도 파국을 향해 간다. 진실했다면 됐다고?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별한 사람들이 쓴/ 마지막 편지들을 읽는다/ 마지막이므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진실은 그저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천국 시인 유희경 설탕 덩어리들 마지막 편지들

2024-10-30

[시조가 있는 아침]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이매창 (1573~1610)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가곡원류     ━   전란의 시대, 고독과 이별의 시인     아전의 서녀 이향금은 기생이 된 것으로 보아 어머니도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매창, 계유년에 태어났다 하여 계생(癸生) 또는 계랑(桂娘)이라고도 불렸다. 1591년 봄, 부안에서 유희경을 만나 시를 주고받다 사랑에 빠졌다. 천민 출신이었으나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류했던 시인 유희경과는 스물여덟 살의 나이 차이도 둘의 사랑을 막진 못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모아 참전했다. 매창의 시조에 답하는 유희경의 시가 있다.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想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 懷桂娘(회계랑) 매창을 생각하며   이별 15년 후 재회해 함께 변산반도를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으나 열흘 만에 다시 헤어져 매창은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전란의 시대, 고독과 이별을 안고 살던 시인 매창은 평생 함께한 거문고를 안고 묻혀 부안사람들은 그녀의 무덤이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를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사후 58년, 고을 아전들이 그녀가 남긴 시 58편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발간했으니 아름다운 일이었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이화우 시인 유희경 이향금은 기생 고을 아전들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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